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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세계 이야기

끝없는 정치 불안정과 남미 최초 원주민 대통령을 배출한 볼리비아 2편

by 시코르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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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현재 볼리비아 지역은 잉카 제국이 지배 점령 하던 지역이었다. 페루와 안데스 산맥이 자리 1200-1500년대까지 잉카문명이 융성 하였으며 스페인에 침략 당하면서 멸망 하였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잉카제국의 문화적인 공통점을 바탕으로 국가연합을 형성 하기도 하였지만 칠레의 개입으로 인하여 그 연합은 3년만에 해체 되어 버린 역사도 있다.

서인도제도에서 스페인 침략자들이 조금씩 남하 함에 따라 천연두 바이러스가 원주민들이 침투 하여 인구 전체적으로 조금씩 피해가 누적 되고 각 지역에서 반란이 시작하. 또한 침략자의 낯선 모습과 화력에 단 160명의 스페인 군인들에게 잉카 제국이 멸망 해 버렸다.


이 때가 1538년, 스페인이 볼리비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볼리비아 1편에서 설명 하였듯이 1541년에 대규모 은광이 발견 되고 대도시가 생겨나고 유럽 침략들에게는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의 땅, 원주민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지옥이 되었다. 1780년대 원주민들이 각종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 나고자 독립운동을 전개 하였으나 실패 하여 오히려 인디오들의 모든 지배 계급과 고유의 문화가 모두 없어지는 비극이 발생 하였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스페인 본국을 위협하자 1806년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들이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나 다시 실패 하였다. 여러 실패를 딛고 그 이후에도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 하기 위한 투쟁을 꾸준히 이어나가 1825년에 드디어 독립을 쟁취 하였다.
하지만 불행 하게도 스페인으로 독립 이후 180년동안 2000년도 초반까지 공식적으로 취임한 대통령이 64명, 임시정부가 150개 독립 이후 정치적으로 불안한 역사가 시작 되었다. 잦은 군사 쿠데타로 죽음으로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파라과이와 영토 분쟁


1편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볼리비아는 칠레와 전쟁으로 해안을 잃고 내륙국가로 전락 하게 되어 볼리비아는 국가적인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을 타게 하고자 볼리비아 남쪽 파라과이과의 국경지역의 강을 이용하면 대서양으로 통하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된다. CHACO라는 지역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가 접해 있고 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면서 심지어 석유가 매장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석유 회사의 예측에 따라 서로 분쟁이 격화 되어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의 영토 분쟁 지역인 CHACO

볼리비아 25만명 파라과이 15만명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였고 양 측이 치열한 전투와 풍토병으로 6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전쟁이 종료 되었다.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해당 지역은 파라과이에게 소유권을 빼았겼다.
칠레, 파라과이 두 번의 전쟁에 모두 크게 진 볼리비아는 패전의 원인을 국가 의식의 부족으로 규정하였다. 전쟁을 하면서 하나로 통합 되지 않는 국민들을 단합시키기 위해 공동체 의식 캠페인을 진행 하였으며 남미 최초로 자원을 국유화 하였으며 일명 볼리비아 혁명이 일어나서 남미 최초로 보통 선거 및 토지 개혁을 이루어 낸다.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지만 급격한 정치적 혼란이 40년간 이어져 왔다. 정치적인 혼란이 이어져 오던 중 2002년 원주민들의 코카 재배 합법화와 전통문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검은 10월 사건이 일어나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 하였다. 이런 대규모 유혈 사태를 바탕으로 원주민 민중 봉기로 일어나서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 한고 갈등 끝에 2005년 남미 최초로 원주민 출신인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남미 최초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에너지 국유화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진행하였으며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다. 하지만 헌법이 정해진 제약에 따라 더이상 연임이 불가능 해지자 무리하게 선거 조작을 시도하다가 현재 멕시코로 망명을 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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